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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굴된 한국전쟁 영상에는 70년 전 긴박했던 상황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특히 전쟁 과정에 수원이 최전방
지휘소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긴박했던 당시
모습을 박일국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70년 전 6월 28일, 수원 군비행장에 C 54 미군 수송기가 착륙했습니다.
잠시 후 창문에서 불길이 일더니 금세 비행기 전체가 화염에 휩싸입니다.
오던 중에 공격을 받았지만 활주로에 불을 끌 수 있는 소방
시설조차 없는 상황인 겁니다.

무사히 도착한 다른 수송기에선 서둘러 무기가 든 상자를 나릅니다.
나무로 위장한 트럭은 서둘러 비행장을 빠져나갑니다.
미군 최전방 지휘소가 차려진 수원 서둔동으로 가는 겁니다.

바로 다음 날, 수원 비행장에 이승만 대통령이 내립니다.
대전으로 피난 갔다가 미군 최전방 지휘소를 책임지고 있는
처치 준장을 만나러 온 겁니다.
담배를 물고 있는 처치 준장이 이 대통령과 미군 관계자의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같은 날 영상에는 일본에 있던 맥아더 장군이 수원에 도착한
모습도 보입니다.
기자와 이야기 하는 모습, 자신의 전용기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까지 모두 영상에 담겼습니다.

7월 1일, 전쟁 발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수원역에는 광명과 수지 풍덕천 쪽으로 후퇴한 한국군이 집결합니다.
집결지엔 지금은 사라진 기와 지붕의 수원역이 보입니다.
군복 차림부터 경찰 복장까지 다양한 병력이 섞여 앉은 모습입니다.
역 광장에는 춘천과 인천에서 이감 중인 앳된 얼굴의 소년
사상범들도 모였습니다.
대전으로 이감 중인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구체적인 이감 기록이 없는 상황입니다.

- 이동근 수원 박물관 학예사
"수원역에 집결하고 있던 경찰과 군인들의 모습들 그리고
인천 형무소와 춘천 형무소에서 이감 중이다가 수원역에 억류돼있던
소년 사상범의 모습들이 전쟁의 긴박함과 전쟁의 가장
큰 아픔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천 상륙작전 이후, 북진이 한창이던 50년 12월 17일

수원 비행장엔 출격을 준비하는 전투기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보름 뒤, 1.4 후퇴로 1월 7일에 다시 수원이
중공군에게 점령 당합니다.

수원을 다시 수복한 1월 28일 영상에는 장안문을 통과해
북진하는 미군 탱크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수원 비행장에는 맥아더와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찾았습니다.
수원이 또다시 최전방 지휘소가 된 겁니다.
미군이 이승만 대통령을 대하는 모습도 전쟁 발발 초기와는
달라졌고 한국군도 전쟁 초기에 비해 전열이 정비된 모습입니다.

이후 일진 일퇴를 계속했던 한국전쟁에서 수원은 긴박한 최전방 지휘소가 됐습니다.
수원이 수복된 지 2달 만에 수원 시청이 복구됐고 수많은
피난민들에게 양곡을 보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전쟁 과정에 피해를 잎은 수원 시민은 864명으로 집계돼고 있습니다.
이중 절반 정도인 48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영상은 날짜와 장소가 표시된 것이 많아 전쟁
과정에 역사를 고증하는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뉴스 박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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